Thursday, September 30, 2010

교회 영성가 소개(28)

HAMPOLE의 리차드 롤(Richard Rolle, 1295-1349 A.D.)
영국 수도자(hermit)이며 신비주의자. Yorkshire 출신인 그는 옥스포드에서 수학했지만, 19세의 나이에 수도자가 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옥스포드를 떠나 파리로 가서 그곳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326년부터 그는 John Dalton의 구역에서 수도자로 살았다. 그리고 그의 영적 지도 아래있었던 시스터시안 수녀원 가까이 있는 Doncaster로부터 멀지 않은 Hampole에서 그의 마지막 날들을 보냈다. 롤은 라틴어뿐만 아니라, 지방언어로 저술한 첫 기독교 저자들 중에 한 사람이다. 주님의 고난에 대한 그의 헌신은 그 주제에 있어서 영어로 쓰여진 것 중에 가장 감동적이고 세련된 작품 중 하나인 "고난의 묵상(Meditation of the Passion)"에 잘 나타난다. 많은 헌신적 시들을 남긴 그의 기념축제일은 9월 29일.

교회 영성가 소개(27)

마이스터 엑크하르트(1260-1327 A.D.)
독일 도미니칸 신비주의자. 귀족가문으로 Thuringia, Hochheim에서 출생했고 젊은 나이에 Erfurt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에 들어갔다. 1302년에 파리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304년에 도미니칸수도회의 Saxon지역의 대교구장이 되었다. 그리고 1307년에 보헤미안 수도원들을 개혁하는 일이 맡겨졌다. 1311년에 그는 교사로서 파리에 보내졌다. 얼마 후 독일로 다시 돌아와서 Strassburg에서, 그 다음에는 Cologne에서 살았다. 여기서 그는 그의 시대에 가장 유명한 설교가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이단적 가르침으로 고소를 당해, 1326년에 Cologne의 대주교 앞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교황에서 상고했고, 심리가 진행되는 중에 죽었다. 1329년에 요한 22세가 그의 가르침 중에 28가지를 이단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정죄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Tauler와 Suso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당시의 검열로 인해 상실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는 그의 시대적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보여졌던 것보다, 현대 영성의 사상에 커다른 영향을 미친 도미니칸이면서 신비주의자다.

교회 영성가 소개(26)

Foligno의 안젤라(1248-1309 A.D.)
움부리아 신비주의자. 그녀는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그녀의 삶의 대부분을 Foligno에서 보냈다.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금욕과 기도의 삶에 전념했다. 그리고 후에 프란시스칸 속세수녀(tertiary)가 되었다. 그녀는 자주 환상을 보았는데 특별히 주님의 고난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것들의 내용이 그녀의 고백자, Brother Arnold에 의해 받아 적히게 되었는데, 후에 Liber Visionum et Instructionum으로 회자되었고, 가장 강력했던 초기 프란시스칸 경건을 보여준다. 안젤라는 1693년 이노센트 7세에 의해 시복(역, 교황이 죽은 자에 대해 복자(the Blessed)가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되었다. 그녀의 기념축일은 1월 4일.

Monday, September 27, 2010

교회 영성가 소개(25)

JACOPONE DA TODI(1230-1306 A.D.)
프란시스칸 시인이다. Bologna에서 법을 공부하고 몇년 동안 세속적인 삶을 산 후에, 그는 1268년 그의 아내의 죽음으로 회심했고, "기독교 철학자(Christian Diogenes)"가 되므로 그의 친구들을 놀래켰다. 1278년에, 그는 프란시스칸 평신도-형제가 되었고, 1294년에 그와 그의 형제 몇몇이 그 수도회의 규율을 지키며 살기 위해 Celestine 5세의 허락을 받아 독립된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되었다. 보니파스 8세가 그 공동체를 불법화했고, 1303년까지 Jacopone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는 세련되고 깊이 헌신된 시들을 작시했고, 그로인해 대단한 대중적 찬사를 받게 되었다. 그의 뛰어난 금욕생활과 그의 신비한 시들의 명성이, 아마도 보니파스 8세에 대한 그의 조소적 공격만 아니었다면, 성자서품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의 기념축일은 12월 25일.

교회 영성가 소개(24)

MAGDEBURG의 MECHTHILD(1210-1280 A.D.)
중세독일 신비주의자이며 영적 저술가. Saxony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자기부인(humiliation)의 열망 속에 그녀의 집을 떠나 Magdeburg에서 비구인(Beguine)이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기도와 참회의 삶을 살았다. 그녀의 도미니칸 고백자의 충고로 그녀는 Das Fliessende Licht der Gottheit라는 책제목으로 그녀의 환상들을 기록했다(1250-1269). 후에 그녀는 Helfta에 있는 시스터시안 수녀원에 안착해서, 그녀의 책에 더 많은 내용을 첨부했다. 강압적이면서도 시적인 형태로 쓰여진 그녀의 저술은 독일 중세 신비주의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환상 중에 성결된 마음의 계시가 있다. 초기 Low German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녀의 저술은 Middle High German과 라틴번역들로 남아있다. 그녀는 종종 그녀와 동시대인물인 Helfta, 또는 Hackeborn의 Mechtilde와 혼동되어왔다.

교회 영성가 소개(23)

보나벤투어(Bonaventure, 1221-1274 A.D.)
Gionvanni di Fidanze에서 출생했고, 프란시스칸 신학자이며 "거룩한 교사(Doctor Seraphicus)"이다. 이탈리아 출생으로 1240년경 프란시스칸 수도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파리에 Hales의 알렉산더 밑에서 수학했다. 그는 그 탁발수도회가 대학을 장악하게 되었던 1257년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성프란시스의 삶이 1263년 그들의 설립자의 공식적인 전기로서 그의 수도회에 의해 인정되었다. 그는 교황으로 그레고리 10세의 선출을 위해 일했고, 1273년 Albano의 추기경감독이 되었으며, Lyons의 공의회에서 뛰어난 역할을 했다. 신학자로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냉담한 입장을 취하면서, 어거스틴과 안셀름의 사상에 충실했다. 토마스와 견해를 달리하면서, 그는 시간의 범주 안에서 세상이 창조된 것을 이성의 조명으로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부어주시는 신비한 조명에 비교했을 때, 어리석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지식에 대한 이 본질적으로 신비한 이론을 그의 "하나님에게 이르는 정신의 길(The Mind's Road to God)"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성마리아의 무흠출생교리를 부인했다. 그의 기념축일은 7월 14일.

교회 영성가 소개(22)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A.D.)
이탈리아 철학자이고 교회에서 "천상의 교사(Angelic Doctor)"로 알려져있다. 가장 뛰어난 카톨릭 신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Aquino의 통치계급 자손으로 출생했다. 도미니칸인 그는 파리에 있는 Albertus Magnus의 탁월한 제자가 되었고, 파리에서 신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느렸고 풍채가 커서 "말 못하는 황소(Dumb Ox)"라고 별명이 붙여진 그는 가장 탁월한 학자풍의 철학자였다. 그의 주요 저서는 Summa Theologica(1267-73)이다. 그는 그의 신앙을 학문지상주의의 최고영광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시작했다. 그는 형식(form)과 내용(matter) 사이에 구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 안에서만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왔지만, 그는 마침내 인정받았고 그의 철학 토미즘(Thomism)이 레오 13세에 의해 공식적인 것으로 선언되었다(1879). 이것은 모든 캐톨릭신자들이 토마스의 교리들에 동의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모든 신자들에 의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수용되었다. 신토미즘으로 알려진 현대운동에서 뛰어난 이들은 Jacques Maritain, Etienne Gilson, 과 Mortimer Adler이다. 그의 기념축일은 3월 7일.

교회 영성가 소개(21)

Abingdon의 에드먼드(1180-1240 A.D.)
에드먼드 리치(Edmund Rich)로 알려져있고 캔터베리의 대주교였다.
Berkshire, Abingdon에서 경건한 부모에 아래에서 태어났다. 메드먼드는 금욕과 성결에 대해 일찍부터 명성을 얻었다. 42세의 나이에 그는 Salisbury 대성당의 Treasurer를 맡았다. 그리고 1233년 그는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짧은 그의 임기였지만, 그는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할지라도, 담대하게 왕실의 과실과 교황의 가혹행위를 조사하려고 했다. 헨리 2세가 교황에서 추천했던 추기경 Otto가 파견대표로 도착했을 때, 에드먼드는 그의 관할교구가 침탈된 것에 대해서 저항했다. 하지만 그 침탈행위를 막지못했고, 결국 그는 스스로 물러나서 조용하게 살았다. 그의 초기 활동기간에 옥스포드에서 새로운 논리학을 가르쳤고, 그 대학과의 인연이 성 에드먼드 홀로 남아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그의 주거지역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되는 옥스포드에 남아있는 중세건물이다. 그는 1247년에 이노센트 4세에 의해 성자로 추대되었다. 그의 기념축일은 11월 16일.

Sunday, September 26, 2010

교회 영성가 소개(20)

Assisi의 프란시스(1182-1226 A.D.)
프란시스수도회 설립자이며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성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이태리 Assisi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Giovanni de Bernardone이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로 여행하면서 Francesco로 불려졌다. 그는 잠시동안 군인생활을 했고, 22세의 나이에 세속적인 것들을 버리고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1209년에 설교를 시작했고, 이후 겸손과 기쁨의 가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기독교적 열정에 대한 그의 일편단심으로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그의 주변에 약간의 남자들이 모였고, 로마로 간 이후에 수도사들로서 함께 조직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후에 이들은 프란시스의 규칙 아래 생활한다. 1224년 환상 중에 그는 성흔,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상처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처를 받았다. 그의 거룩하고 단순한 생활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것들 중에 몇몇이 후에 The Little Flowers of St. Francis로 나타났다. 그는 자연에 대한 기쁨의 찬가인 Hymn of the Sun을 썼다. 그의 기념축일은 10월 4일.

교회 영성가 소개(19)

도미니크(1170-1221 A.D.)
흔히 도미니칸으로 잘 알려진 탁발수도사회(the Order of Friars Preachers) 창설자이다. 그는 스페인 Old Castile에 Calaruega 출신으로, 14세 때에 Palencia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1199년에, 그는 그의 고향교구 Osma의 수사가 되었다. 도미니크는 곧 그 공동체의 대표가 되었다. 그는 이단자들을 회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만들 것을 계획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탁발수도회는 교황에 의해 승인을 받았고, 이후 잘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1220년 Bologna에서 있었던 첫번째 탁발수도회 총회에 참석했다. 그 이듬해 사망했으며 1234년에 성자서품되었다. 도미니크는, 감독직을 세번이나 거절하면서 겸손의 표본이 되었던 동시대 인물 앗씨시의 프란시스보다는  대중적 인정을 받지 못한 엄격한 스페인이었지만, 지도자요 조직가로서 그의 용기와 능력은 탁월했다. 그의 기념축일은 8월 4일.

Saturday, September 25, 2010

교회 영성가 소개(18)

힐데가르트(Hildegard, 1098-1179)
Bingen 근교 Rupertsberg의 여수도원장으로 "Sibyl of the Rhine(라인지역의 예언자)".
Bockelheim에 귀족가문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초자연적 종교 체험을 가졌던 그녀는 인접한 Diessenberg에 있는 은둔자 Blessed Jutta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리고 1116년에 Jutta를 중심으로 모였던 베네딕틴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녀의 사제(confessor)의 지도아래, 그녀는 자신이 본 환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141년과 1151년 사이에 Mainz의 대주교의 승인을 받아 그녀는 26개의 환상을 세 권의 책으로 나누어 기록한 Scivias를 남겼다. 그 이후에 그녀는 그녀의 생애전반에 걸쳐 교회 안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13, 14세기 동안 그녀를 성자서품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15세기부터 그녀는 로마의 순교자열전에서 성자로 불렸다. 그녀의 기념축일은 9월 17일이며 독일의 여러 교구에서 지켜지고 있다.

교회 영성가 소개(17)

St. Victor의 리챠드(d. 1173 A.D.)
빅토리아시대의 신비주의자이며 신학자. 영국출신으로 그는 St. Victor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원장이던 Hugh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그의 주요 철학적 원리들이 포함되어있는 여섯 권짜리 De Trinitate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경험론적 근거에 대한 필요를 주장하는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을 계속해서 취한다. 그러나 토마스와는 달리, 리챠드는 사변적 사고의 과정을 통해 기독교 삼위일체 교리의 본질 개념들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 영성가 소개(16)

클레르보의 버나드(1090-1153 A.D.)
클레르보 수도원장. 귀족 출신인 그는 Citeaux에 있는 수도원으로 그의 형제들과 함께 들어가면서 일찍부터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다. 2년이 채 안되어서, 그는 씨스터시안 수도원(Cistercian Order)의 중심이 되었던 수도원을 클레르보에 세웠다. 교황의 승인과 함께 씨스터시안 수도원이 번성했다. 그는 1174년에 성인(Saint)으로 추앙되었고 1830년에 "교회의 교사(Doctor)"로 인정받았다. 그의 기념축일은 8월 20일.

Thursday, September 23, 2010

교회 영성가 소개(15)

St. Thierry의 윌리암(1085-1148 A.D.)
사변적 철학자(Scholastic philosopher)이며 신비주의자이다. 그는 귀족출신으로 Leige에서 출생했고, Reims에 있는, 훗날 그가 들어갔던 St. Nicasius의 베네딕틴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St. Thierry의 원장으로 선출되었고, 후에 Ardennes 숲에 있는 초라한 Cistercian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성 버나드와 친한 친구인 그는 성경과 교부들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변증신학 작품들을 쓰면서 그의 생애를 보냈다.

교회 영성가 소개(14)

세인트 빅토르의 휴(Hugh of St. Victor, 1096-1141 A.D.)
빅토리안 신학자(Victorian theologian)이고 신비주의자다. 그는 Saxony에서 출생했고 Blakenburg백작가문에 속했다. 그는 성어거스틴수도회 수사에게 교육을 받았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따랐으며, 1115년에 파리에 있는 세인트 빅토르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Champeaux의 William의 지도 아래 배운 것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1133년에 수도원 부원장이 되었고, 그는 철학자와 신학자로서 어거스틴을 통해 전수된 플라톤적 전통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신학적 입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De Sacramentis Christianae Fidei인데, 여기서 그는 모든 피조물은 신의 생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우주에 대한 그의 상징적 개념을 전개했다.

교회 영성가 소개(13)

다마스커스의 요한(675-749 A.D.)
위대한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이며 "교회의 교사(a Doctor)"이다. 다마스커스의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했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칼리프(the Caliph)에 대한 기독교 최고대표자가 되었다. 716년에 예루살렘 근교 성사바스의 한 수도원에 들어갔고 사제가 되었다. 교회성상논쟁에서 강력한 성상주의 입장을 취했고 749년 사망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그의 동료 수도사였던 마이우마의 감독, 코스마스 멜로두스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지혜의 샘"(Fount of Wisdom"이다. 그의 삼위일체 신학은 카파도시안 교부들의 교리를 잘 정리한 것이다. 1890년에 레오 13세에 의해 "교회의 교사"로 선언되었고, 그의 기념축일은 12월 4일.

Monday, September 20, 2010

교회 영성가 소개(12)

Nursia의 베네딕트(480-550 A.D.)
서방 수도원제도의 원조("the Patriarch of Western Monasticism")라 불린다. 누르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로마에서 교육받았고 그곳의 세속화에 크게 실망하였다. 그는 수비아코에 있는 한 동굴로 들어갔고, 거기서 수년동안 은자(hermit)로 살았다. 그는 각각 12명의 수도자로 구성된 12개의 수도원을 설립했다. 그는 수도자들과 함께 Monte Cassino로 가서 그의 죽기까지 거기서 살았다. 바로 여기서 그는 수도원 개혁을 위한 그의 계획을 입안했다. 그는 사제로 안수받지 않았다. Monte Cassino에 있는 그의 자매 Scholastica의 무덤에 묻혔다. 그의 기념축일은 3월 21일.

교회 영성가 소개(11)

존 카시안(John Cassian, 360-435 A.D.)
그는 수도사였다.  젊은 시절에 베들레헴에 있는 한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얼마후 곧바로 이집트에서 수도원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떠났다. 그는 크리소스톰에 의해 교황 이느센트1세에게 한 사절로 보내졌을 때,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 집사였다. 그는 마르셀 근처에 두 개의 수도원을 세웠고, 그의 이집트 생활 동안 수집했던 자료를 근거로 the Institutes와 the Conferences 라는 두 권의 책을 썼다. 수도원 생활을 위한 일상 규율들을 기록하고 수도자의 완전함에 방해가 되는 8가지 중요한 장애들을 토론하는 the Institutes는 베네딕트에 의해 인용되고 있는 것처럼, 많은 서방규율의 근거로 받아들여졌다. The Conferences는 동방수도원의 위대한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카시안은 분명히 semi-Pelagianism의 창설자다. 동방교회는 그를 성자로 다루는데 반해, 서방에서는, 7월 23일을 그의 기념축제일로 지키는 마르셀 이외에는,  결코 공식적으로 성인추대되지 못했다.

교회 영성가 소개(10)

히포의 어거스틴(354-430 A.D.)
히포, 리기우스의 감독이었고 교회의 교사("Doctors of the Church)중 한 명이다. 북아프리카 타게이스트에서 이방 아버지와 기독교인 어머니, 모니타 사이에서 태어나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 카르타고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다. 그는, 그의 기독교성장배경을 무시한채, 첩을 두었고 15년 동안 함께 살았다. 373년에 키케로를 읽은 후, 철학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수년 후 마니키안이 된 후, 로마로 이주해서 학교를 운영했지만 곧 밀란에서 교수생활을 위해 떠났다. 거기서는 그는 암브로즈 감독의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되었고 387년 부활절 전날 세례를 받았다. 북아프리타 히포에서 391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396년에 히포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430년 8월 28일 그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어거스틴의 변함없는 중요성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그의 통찰력있는 이해에 근거한다. 그의 고백록과 신학적 저술들은 신약성경 이후 실제적으로 어떤 저자보다도 더 큰 영향을 기독교에 끼쳤다. 흔히 모든 철학이 소크라테스에 대한 각주라면, 그것처럼 모든 신학은 어거스틴에 대한 각주라고 알려져왔다. 그의 기념축제일은 8월 28일.

Saturday, September 18, 2010

교회 영성가 소개(9)

제롬(342-420 A.D.)
그는 잘 알려진 성경학자다. 아퀼레이아 근교 스티도에서 태어난 제롬은 로마에서 공부했고 거기서 세례를 받았으며, 아퀼레이아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 전에 가울지방으로 여행을 했다. 안디옥에서, 그는 히브리어를 공부했고 사제로 서품받았다. 후에 교황의 개인비서로 로마로 돌아왔다. 마침내 그는 베들레헴에 있는 한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남은 삶을 보냈다. 제롬의 작품들은 초기 교회에서 탁월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원어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친구에 대한 편지들과 Helvidiu와 Jovinian를 논박하는 논문들 몇몇 곳에서 그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했다. 그의 기념축제일은 9월 30일.

Friday, September 17, 2010

교회 영성가 소개(8)

존 크리소스톰(347-407 A.D.)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었고 "교회의 교사(Doctor)"이다. 그는 안디옥에서 법을 공부하려 했지만, 안디옥파의 리더였던 다소의 디오도레 문하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수도자의 삶의 체험하는 중에 381년 집사 안수를 받았고 386년에 사제가 되면서 그의 뛰어난 설교에 걸맞게 황금입술이라는 뜻의 크리소스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의 뜻에 반해서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었고, 후에 그는 성경적 해석의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 때문에 불명예를 입기도 했다. 결국 그는 안디옥으로 그 다음에는 폰투스로 추방되었고, 차가운 겨울날씨로 인해 죽었다. 그의 교구생활 동안, 그는 기독교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초기의 작품인 "사제직에 관하여"는 기독교 사역자의 책임에 대하여 아주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의 기념축제일은 1월 27일.

Thursday, September 16, 2010

교회 영성가 소개(7)

Pontus의 에바그리우스(346-399 A.D.)
폰투스 태생으로 영적 저술가이다. Naxianzus의 그레고리에게 집사로 안수받았으며 콘스탄티노플에서 잘 알려진 설교가가 되었다. 382년에, 그는 수도자들 속에서 그의 영혼을 고양하기 위해 티트리안 사막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이집트의 마카리우스의 친구이자 제자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그의 남은 삶을 보냈다. 353년 이후로 그는 오리겐적 견해, 특히 만인구원설에 대해 여러번 정죄되었다. 그는 다방면으로 저술 활동을 한 첫번째 수도자이면서, 기독교영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Cassian, Dionysius, 그리고 Maximus the Confessor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들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고, 다만 라틴어와 시리아어로 변역되어 전해진다. 그는 시편과 잠언을 주해했다.

Wednesday, September 15, 2010

교회 영성가 소개(6)

밀란의 감독, 암브로즈(339-397 A.D.)
그는 가울지방(Gaul)의 집정관 아들로 Trier에서 태어났다. 로마의 법정에서 훈련받은 후 21세의 나이에 밀란과 함께 동시에 Aemilia-Liguria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밀란의 감독이 죽자, 평신도들이 아직 그가 세례조차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밀란의 감독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세례를 받았고 학업에 전념해서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어거스틴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영향을 미치는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다. 다량의 저술가로 헬라어에 능통한 덕에 많은 동방신학을 서방에 소개할 수 있었다. 그의 서신들은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니며, 아타나시안신조(Athanasian Creed)의 입안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제롬, 어거스틴, 그레고리 대제와 함께, 그는 네 명의 전통적인 라틴교회의 교사(Doctor)중에 한 명이다. 그의 기념축제일은 12월 7일.

Sunday, September 12, 2010

교회 영성가 소개(5)

Nyssa의 그레고리(330-395 A.D.)
그는 닛사의 감독이었고 카파도시안 교부들 중에 한 사람으로 바실의 동생이다.
어린 나이에 교회 사역을 위해 맡겨졌지만, 그는 한때 수사학자가였고, 후에 그의 형제의수도원으로 들어갔다. 371년에 닛사의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니케아신조의 지지자로서 안디옥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했다. 위대한 사상가요 저술가였던 그는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는 세례와 성찬 예식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성육신, 그리고 구속에 대한 교리를 설파했다. 그의 기념축제일은 3월 9일.

Saturday, September 11, 2010

교회 영성가 소개(4)

Nazianzus의 그레고리(329-389 A.D.)
카파도시안 교부들 중에 한 명으로 "The Theologian"으로 불린다. 카파도시아에 나시안수스의 감독의 아들인 그는 동시대 인물은 바실과 아덴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마지못해 사제로 안수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379년 아나스타시스에서 설교했다. 이것으로 인해 니케아신조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잠시동안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있는 동안인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회소집을 주도했다. 그의 중요한 저서로는 그의 콘스탄티노플 체류시절부터 성령에 관한 교리를 포함하는 "Five Theological Orations"; 바실과 함께 편집한 오리겐 작품들의 발췌물인 "Philocalia"; Apollinarianism을 반박하는 여러개의 중요 서신들; 그리고 많은 시집들이 있다. 그의 기념축제일은 5월 9일.

Friday, September 10, 2010

교회 영성가 소개(3)

바실(Saint Basil The Great, 330-370 A.D.)
그는 삼인의 카파도시안 교부들 중에 한 명이며, 닛사의 그레고리와 마르크리나의 형제다. 카파도기아에 있는 카이사레아, 콘스탄틴노플, 그리고 아덴에서 교육을 받은 후에, 그는 358년경 신카이사레아에 있는 아이리스 강 옆에서 수도자(hermit)로 정착했다. 370년에 카이사레아의 감독이 되었고, 거기서 그의 남은 삶을 보냈다. 성품적으로, 바실은 웅변가 기질에 학자풍, 그리고 정치가같은 면이 있는 것외에, 개인적으로 아주 뛰어난 경건성을 소유했다. 그의 중요한 저술로는 상당한 분량의 편지들, "On the Holy Spirit", 그리고 아리안 이단에 맞서 저술된 세 권의 "Books Against Eunomius"가 있다. 그의 기념축제일은 6월 14일.

Wednesday, September 8, 2010

교회 영성가 소개(2)

플로티누스(Ploinus, 205-270 A.D.)
그는 신플라톤주의자이며 신비주의자로 Lycopolis 출신의 사람이다. 페르시아에서 동양사상을 공부한 후, 244년 로마에서 자신의 학교를 세웠다. 51세의 나이에 사후 출판된 54논제들을 쓰기 시작했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모든 존재 계층의 꼭대기에 유일자(the One) 또는 지고의 선(the Good)이 있는데, 그것의 두려운 생명은 불가해한 첫 원리(the first principle)이다. 그 밑에 이해할 수 있는 이념들의 세계가 있고, 가장 아래 평면 위에 플로티누스식의 3개 구조 중에 세 번째가 되는 세계 영혼(the World Soul)이 있다. 관상(Contemplation)은 가장 완벽한 활동이다. 왜냐하면 그것에 의해서 영혼들이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플로티누스의 "자연신비주의(natural mysticism)"과 전통적인 정통교회 신비주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에서는 연합이 외부의 도움없이 영혼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반면에, 정통사상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플로티누스는 어거스틴과 디오니시우스(the Pweudo-Areopagite)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중세시대 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Tuesday, September 7, 2010

교회 영성가 소개(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d. 215 A.D.)
그는 헬라 신학자였고, 아테네(Athens)에서 출생했습니다. 기독교로 회심한 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쳤고 플라톤을 기독교의 가르침에 응용하려고 했던 첫번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비록 영지주의에 대항해서 기독교를 변호했지만, 그는 분명히 지성적 지식(the intellectual knowledge)을 가진 사람을 다른 기독교인들보다 우위에 두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의 작품 일부가 남아있고 오리겐이 그의 학생들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Monday, September 6, 2010

'기도'에 대한 책 하나 소개합니다.

"기도: 하나님과의 우정" (제임스 휴스턴 저)
 - "The Transforming Friendship" (By James Houston) -
제임스 휴스턴은 독창적으로 복음주의적 영성을 개척하신 분으로 이 책에서 성경과 바른 신학에 기초한 참된 영적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삼위일체(Trinity)에 근거한 영성개발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 줍니다. 한국에서는 한국 IVP가 1998년에 번역출간했으나, 원서는 그보다 10년 앞서 출판되었으므로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3-4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영성에 대한 관심

기독교영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구별없이 모두 영성에 대한 관심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양자가 추구하는 영성의 구별이 모호할 때도 있구요.
물론 이 세상과 그 안에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보면, 영성이라는 영역도 때로는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영성이 공통점을 가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엄연히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영성의 초점은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 영성은 크게 개신교영성(protestant spirituality), 로만캐톨릭영성(roman catholic spirituality), 동방정교영성(orthodox spirituality)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가 무슨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독교영성을 추구하는 한 평범한 구도자로서 앞으로 틈틈이 기독교영성에 대한 글을 올려볼려고 합니다.